성찰 없는 권력은 괴물이 된다.

2022.04.14 09:51:00

 

수난주간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강도의 굴혈’이 된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숙청)하시고 성전과 그에 종사하는 자들의 위선과 탐욕과 불법을 경고하시고 성전을 나오시면서 성전 멸망을 선언하신다. 이어 세상 종말(혹은 개인 종말)에 대비하여 근신(성찰)의 삶을 권면하신 후 제자들과 더불어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성전 밖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상 구원을 위한 대속적(代贖的) 수난의 길로 기꺼이 가시기 위해 기도하셨던 예수님. 그를 잡아 죽이기 위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아 온 자들을 항해 예수님께서는 “칼을 취한 자는 칼로 망한다.”(마태복음 26장 52절)는 위대한 말을 남기셨다.

정치권력이든 검찰 권력이든, 문화 권력이든, 교육 권력이든, 종교권력이든 세상 어떤 권력도 마찬가지이다. 성찰 없는 권력, 절제 없는 권력은 강도 같은 무서운 ‘괴물’이 된다. 권력의 괴물화이다. 누구든 절대 권력(반지)을 취하려고 하는 자는 비극적 괴물이 된다는 ‘반지의 제왕’의 영화가 던져주는 메시지이다. 절대 반지는 비극적 인간 권력의 최후의 유혹자로 모든 것을 빨아드리고 무너뜨리는 무서운 블랙홀이며 싱크 홀이다. 돈의 맛도 달콤한 비극적 맛이지만 권력의 맛은 이 보다 더하다. 올 가을에는 ‘반지의 제왕: 권력(힘)의 반지’(The Lord of the Rings: The Rings of Power)라는 TV드라마가 나온다고 한다. 인간 속에 숨어 있는 끝없는 권력(힘)에 대한 욕망의 서사시는 모든 인간이 흠모하면서도 고통 하는 거대담론이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권력의 욕망에 사로잡혀 서로 물어뜯는 괴물이 된다.

슬프게도 예수님 시대의 성전은 더 이상 ‘만민(萬民)을 위한 기도의 집’이 아니라 ‘강도의 굴혈’이 되었다. 성전 비극의 전조며, 입법 제조기인 국회 비극의 전조이기도 하다. 어떤 권력이든 성찰 없는 권력, 절제 없는 권력의 비극적 멸망을 보는 것 같다. 절대 권력의 피폐함을 막기 위해 삼권 분립이 있는 데도 막무가내다. 불의 산에서 절대 반지를 끼고 싶은 스미골(골룸)이나 프로도처럼 그 반지와 함께 어디를 향해 가는 지도 모르고 권력의 날라리 깨춤들에 취해 있다. 현재 권력에만 취해 권력의 조종(弔鐘)이 울릴 것을 아직도 모르는가? 이것은 현재 권력만이 아니고 미래 권력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면서 서로들 국민을 볼모로 삼는다. 열린 민주가 폐쇄된 민주로 나아가는 마당에 국민의 힘 또한 국민의 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생들에게 참된 해방과 안식(쉼)을 주어야 할 종교(유대교)가 예수님 시대에는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는”(마태복음 23장 4절) 슬픈 종교가 되었다. 정치 또한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수난 주간, 다시 주님의 말씀과 함께 자기를 비워 종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구주가 되신 기독교(예수교)의 참 모습을 가슴에 새겼으면 한다. 자기를 비워 종으로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하며 부활을 맞이하려고 한다. 잔인한 4월이 벚꽃의 향연 속에 지나가고 있다. 봄비가 내린다. 목련꽃의 찬란한 비극적 낙화를 보면서도 ‘꽃의 영광, 풀의 꽃의 영광’(시편 90편 6절과 야고보서 1장 11절)을 마음에 새기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이다. 비가 오고 꽃이 진 뒤의 푸르름(신록)을 꿈꾼다.
 

서현일보 기자 hukim63@naver.com
Copyright @서현일보 Corp. All rights reserved.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명지로116번길 9-70 (남동,명지엘펜하임) 107동 1002호 등록번호: 경기,아53170 | 등록일 : 2022-02-15 | 발행인 : 김현욱 | 편집인 : 김현욱 | 전화번호 : 010-9930-7703 Copyright @서현일보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