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6시간동안 와인 6병..그렇게 尹 책사 된 盧의 책사 [尹의 사람들]

2022.04.19 09:50:25

 

( 서현일보 장경미 기자 ) 2021년 7월 19일 저녁, 당시 대선 출마 선언 후 국민의힘 입당을 고심하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당의 전직 대표급 인사의 자택을 찾아갔다. 윤 당선인은 이날 사실상 초면이나 다름없던 이 인사와 독대한 자리에서 와인을 6병 넘게 마셨다. 정치ㆍ사회 현안에 대한 이야기가 6시간 이상 오갔다. 자리가 끝난 후 윤 당선인은 그에게 이렇게 요청했다고 한다. “쓰신 책의 가(假)제본이라도 달라. 그걸 보고 공부하겠다.”

 

그렇게 윤 당선인이 받은 책이 김병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의 저서 『국가, 있어야 할 곳에는 없고, 없어야 할 곳에는 있다』다. 이 책에는 김 위원장이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낼 당시 문재인 정부를 향해 쏟아냈던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 “개인의 자율과 창의를 존중하는 자율주의”가 그의 주장이었다. 윤 당선인은 이 책을 서재에 두고 정독했다고 한다. 윤 당선인은 지난달 10일 대통령 당선 기자회견에서 “국민 개개인에게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고 자율과 창의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역동적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김 위원장과 윤 당선인의 인연은 오래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정책실장을 지낸 후 정치권에 있던 김 위원장과 ‘스타 검사’였던 윤 당선인이 여러 자리에서 마주칠 기회는 있었지만, 두 사람이 진지한 대화를 해본 건 김 위원장의 자택에서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당시 가장 인상 깊었던 윤 당선인의 모습으로 '권력의 속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꼽았다. 김 위원장은 “그간 만났던 여러 대통령 후보자들은 권력으로 뭘 할 수 있는지 등 긍정적 면만 얘기했다. 그런데 윤 당선인은 대통령 권력이 얼마나 무겁고, 무섭고, 결국 엄청난 짐으로 돌아올 수도 있단 걸 통감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두 전직 대통령 수사를 직접 지휘했던 윤 당선인과 자신이 ‘책사’ 역할을 했던 한 전직 대통령을 떠나보낸 김 위원장의 경험이 맞닿은 순간이었다.

 

이날 이후 윤 당선인은 자주 김 위원장과 소통하며 조언을 구했다. 대선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인 11월 7일에도 만찬 회동을 가졌다. 선대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게 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김병준 위원장을 선대위에 중용하는 데 비판적 입장이었지만, 윤 당선인은 김병준 위원장에게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동급인 상임선대위원장직을 맡기며 신뢰를 보였다. 당시 김 위원장은 공개발언을 자제하면서 윤 당선인이 갈등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선대위 내부에 “제일 중요한 건 후보”라며 힘을 실었다고 한다.

이 대표와 윤 당선인 간 갈등으로 선대위가 해체된 뒤에도 윤 당선인은 자주 김 위원장과 소통했다. 김 위원장은 옆에서 지켜본 윤 당선인의 강점을 “추진력이 강하고 인간관계가 부드러운 점”이라고 설명하며 “다만 사람을 좋아하는 스타일상 권력을 운영할 때 조심할 부분도 있다”고 당부했다.

김 위원장은 윤 당선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엔 “나는 이제 내 본분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인수위원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 여러 하마평에 올랐지만 윤 당선인에게 직ㆍ간접적으로 이 같은 의사를 전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사적인 자리에서 “나는 내 인생의 마지막을 ‘선생’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자치 분권을 연구한 학자로서의 사명을 강조한 발언이다.

 

윤 당선인은 그런 김 위원장을 지난 달 14일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위원장으로 임명하며 다시 중용했다. 당시 윤 당선인은 직접 첫 특위 회의에 참석해 “새 정부는 ‘지방시대’라는 모토를 갖고 일해달라. 인수위가 종료돼도 제 임기 동안 계속 위원회를 유지시키고 위원회 활동에 저도 많이 의지하겠다”며 김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김 위원장은 “균형발전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것까지가 내 역할”이라며 “공직에 가지 않겠다는 뜻은 변함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김 위원장이 향후 윤석열 정부에서 요직에 중용될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보고 있다. 윤 당선인이 설치를 약속한 민관합동위원회 등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경미 기자 yuhan3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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